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 발생 == [[1987년]] [[11월 29일]], [[이라크]]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[[대한항공]]의 [[보잉 707]] 기종의 KE858편(HL7406)[* 이 기체는 [[대한항공]] 측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, 우선 [[1971년]] 대한항공 측에서 [[보잉]]에 직접 주문하여 인도받은 첫 번째 기체이다. 1971년 도입 초기에 신문광고에 실린 적이 있었으며, 또, 이 기체로 KE001/002편(당시 경로는 [[김포국제공항|서울(김포)]] - [[도쿄 국제공항|도쿄(하네다)]] - [[다니엘 K. 이노우에 국제공항|호놀룰루]] - [[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|LA]])을 처음 개설했으며, [[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]] 당시 헬싱키에서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특별기로 귀국된 적이 있었으며, 또한 [[1981년]]까지 [[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]]의 역할도 한 적이 있었다. 1990년대까지 살아 있었다면 충분히 [[정석비행장]]에 전시되고도 남았을 기체였다.]이 [[아랍 에미리트|UAE]]의 [[아부다비 국제공항]]을 거쳐 [[김포국제공항|서울(김포)]]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[[방콕]] [[돈므앙 국제공항]]으로 비행하던 도중, [[인도양]]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. 당시 바그다드에서는 99명이 탑승하고, 15명이 아부다비에서 내렸고[* 그 중 13명이 아부다비에서 여행을 종료했고, 2명은 다른 비행기로 환승했다.], 11명이 아부다비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858편을 탔다. 사건 초기에는 단순 기체 고장 및 돌풍 같은 갑작스런 기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, 특히 이 중에 기체 고장의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. 사실 사고기인 HL7406은 사건 10년 전인 1977년 9월 13일에는 [[김해국제공항|부산(김해)]]을 떠나 김포로 착륙하던 중 유압 장치가 고장이 나 동체 착륙한 전력이 있었으며[*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77091400209207007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77-09-14&officeId=00020&pageNo=7&printNo=17215&publishType=00020|KAL 보잉 707 위기일발(1977년 09월 14일 동아일보 7면)]]],앞에 나온 고장의 10년 후이자 사건 약 3개월 전이던 1987년 9월 2일에는 제주를 떠나 김포로 향하던 기체가 [[랜딩 기어]]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[[동체 착륙]]을 하는 등의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 전력[* [[http://imnews.imbc.com//20dbnews/history/1987/1795024_19322.html|대한항공 여객기 동체 착륙(1987년 09월 02일 MBC 뉴스데스크)]]]이 있었고, 수리한 후 첫 출항하여 [[김포국제공항]]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이 바로 858편이었다. 그래서 인지 사고기의 고장 전력은 폭파 사건 음모론의 중요한 정황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.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통 주변 공항 [[관제탑]]이나 공용 통신망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, 여러모로 의아한 사건이었기에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[[테러]]에 의한 공중폭발. 물론 [[TWA 800편 추락 사고]]처럼 전기 합선 등의 원인으로 폭발하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, 폭탄처럼 갑자기 뻥! 하는 것은 힘들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